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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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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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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다솔사(경남)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범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큰 재앙을 겪었으며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 그리고 사왕문을 중건했다. 그런데 1914년 12월에 또 화재가 일어나 모든 전각이 불탔으나 다행히도 대양루는 소실되지 않았으며 그 이듬해부터 3년간 중건 끝에 현존하는 것이 이 건물이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구계서원(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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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구계서원(사천)

구계서원은 사천읍 구암리 만죽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학자인 구암 이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구암 이정은 중종 31년(1536)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문신이자 학자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후진양성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이 서원은 선조 39년(1606)에 세웠으며, 광해군 3년(1611) 사당인 구산사를 세웠다. 숙종 2년(1676)에 ‘구계’라는 현판을 나라에서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경종 3년(1723)에는 성옹 김덕함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으며,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던 것을 1931년에 다시 세웠다. 서원 안에는 대관대, 사당,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구암두문로 361-17
곤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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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역사관광

곤양향교

곤양향교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곤양군이 세종 원년(1419)에 군으로 승격되었음을 상기할 때 향교도 세종시대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중종(中宗) 25년(1530)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곤양군조에 의하면 "관원은 군수·훈도 각 1인씩이다."라는 기록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득강이 곤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업적 가운데 특히 향학에 힘써 많은 유생)을 길러 내었다 한다. 그 후 명종 1년(1546)에 군수 노진이 부임해 와서 처음으로 정동)에 터를 잡아 문묘를 지었다 하였으므로 이 향교 역시 전학후묘형의 소설위 향교임을 알 수 있다. 현종 4년(1663)에는 군수 박영계가 범동으로 옮겼고, 순조 7년(1807)에는 군수 신오가 부임해 와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대성전, 대성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 9동의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대성전 좌우에 동·서 양무가 없고, 대성전의 위치 또한 명륜당 뒤의 오른쪽에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어 두 영역이 완전히 분리된 배치를 보이고 있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에 있고, 사당인 대성전과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해 왔으며, 문묘의 위차위패를 모시는 순서)나 향사 등은 모두 사천향교와 같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향교길 4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