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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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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초기화
무안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향교

무안향교는 1394년 무안읍성의 남쪽에 있는 공수산(현재의 남산)에 세웠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성종 1년(1470)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된 것을 숙종 15년(1689)에 고쳤으며, 그 뒤 정조 13년(1789), 순조 20년(1820), 고종 29년(1892), 광무 6년(1902) 등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 무안향교에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에 점차적으로 지어진 것이며,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과 중국 4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인되어 있고,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지내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무안읍 향교길 20
무안식영정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식영정

식영정은 한호 임연 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터를 잡은 이후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그의 호인 한호처럼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취지로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식영정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이 어우러져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으며,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 임상덕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 임씨의 대를 이은 교류 공간이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 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에 임연이 지은 복거록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다.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나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발산마을미륵당산

무안 지방에서는 대개 당산나무, 선돌, 당집 등을 대상으로 당산제를 지내는데, 발산 마을에서는 장승의 모습을 하는 당산석 2구를 제사의 주체로 삼고 있다. 이 2구의 석인상은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 미륵, 당산, 당산 미륵 등으로 불리는데, 150m 거리를 두고 서 있다. 당산 할아버지는 턱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두툼한 긴 수염이 나 있고, 머리에는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풍화 작용이 심하고 거친 입자의 돌 때문에 세부적인 조각 수법은 알아볼 수가 없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불상과 비슷한 면이 보인다. 신체는 더욱 간결한 선으로만 옷 주름을 표현해 사실성이 떨어진다. 당산 할머니가 초기의 입석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당산 할아버지는 조각을 지닌 상징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발산마을의 당산석은 입면을 형상화한 신앙 물이란 점과 형태상 성기 바위를 모사하고 있다. 이는 당산석이 상징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당산석의 경우 마을 제사에서 주신의 기능을 갖는 신체는 원래 상태의 암석과 당산나무, 당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
무안 유교리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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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무안군역사관광

무안 유교리 고택

남해안 지역의 부농 주택으로 나상열 가옥으로 불리기도 하는 무안 유교리 고택은 1912년 당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방의 천석꾼이었던 나종만에 의해 건립되었다. 양옥의 건축기법으로 건립되었고, 20세기 들어와서야 남도 지방에서 채택한 구조법을 사용하였다. 중층으로 되어있는 대문채는 여느 집보다 천정이 훨씬 높은데, 대문이 크고 높은 것은 당시 그 집안의 재력과 세력을 과시함도 있는듯하다. 대문간에 들어서면 자연석으로 포장된 경사로가 나타나며, 그 끝부분에는 행랑채가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행랑채에 난 중간문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 아래쪽으로는 곡간채가 큰 규모로 건축되어 있다. 안채는 지형의 경사를 이용해 2단으로 석축을 한 후에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안채와 곡간채, 그리고 행랑채, 대문간 등 4채 만이 남아 있으나, 그 이전에는 당시 주택 건축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동재와 서재가 안채 뒤 후원에 독립적으로 건축되어 있었으며 사당과 사랑채 등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삼향읍 유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