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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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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건

조건 초기화
거창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향교

1415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이후 대성전을 설립하고 1572년에 현감 서의가 중건하였으며, 1574년에는 현감 장문한이 명륜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3년에 대성전을 중건하고 1714년에는 현감 김시빈이 대성전 앞에 춘풍루를 건립하였다. 1748년에 도유사 김천분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809년에 도유사 이상조가 중건하였다. 1840년에 도유사 이준옥과 재임 변윤석, 어재의 등이 협의하여 동재와 서재를 중수하였으며, 1799년에는 부사 이성이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중수하였다. 그 뒤 1948년 군정법령에 의해 향교의 재산이 향교재단으로 귀속되고 1950년의 농지개혁법으로 전답이 분배되어 계속 황폐해지다가 1974년 향교직제에 따라 중건 및 보수가 시작되어 1976년 전면 복원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성산길 34
거창 요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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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요수정

요수정은 요수 신권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805년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상량문에 1800년대 후반에 수리한 기록이 있다. 요수정은 수승대 건너편 솔숲에 부속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중층의 정자이며,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 어칸의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구성하였다. 요수정은 자연 암반 위에 바로 세운 건물로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기단을 조성하지는 않았고, 배면 쪽에 경계의 표시와 굴뚝을 겸하는 낮은 돌담을 쌓았다. 수승대의 경치를 감상하고, 시회와 교육 등을 위해 솔 숲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전통정자 건물로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산간지역의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의 내부에 방을 들이고 있어 이 지역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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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거창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에 황고 신수이가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귀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폭 5m 이상, 높이 15m 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이 고목을 안정좌 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며 마을 동측에 흐르는 호음천을 중심으로 큰땀과 동촌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규모와 형식면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시도민속자료 거창 황산마을 신씨고가 등의 지정문화유산은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한 마을 전체가 모두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은 이른바 씨족부농촌으로 소작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석으로 메쌓기 한 위에는 하부의 자연석보다 작은 20㎝ 내외의 돌을 담 안팎에 사용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으며 또한 근년에 쌓은 담장은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하였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 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이 아닌 원지방도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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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

금귀봉의 동남쪽으로 뻗어있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는 무덤으로 이 일대는 석장골 또는 재궁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고분의 모양은 능선 상의 좁은 평지 위에 방형으로 지대석을 설치하고 그 위에 호석을 올려놓고 봉토를 쌓은 방형호석 형태이다. 석축의 동쪽, 서쪽에 2구의 석인이 있는데 동쪽 석인은 두관을 착용한 문인석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형상이다. 서쪽의 석인은 가슴 윗부분이 절단되고 하반신만 남아 있으나 동편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근처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반인들의 무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둔마리고분은 발견 당시에는 파괴가 심하였으나 지금은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무덤 내부 구조는 상자형 쌍돌덧널로 먼저 땅을 판 후 판석으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덧널을 설치한 굴식돌방무덤으로 서쪽에 있던 덧널에는 나무로 만든 널이 1개가 들어 있었으며 동쪽 돌덧널은 비어 있었다고 한다. 양쪽 돌덧널 모두 벽면에 회칠을 하고 흑·녹·갈색으로 인물을 그린 벽화가 있고, 동쪽 돌덧널의 동쪽 벽에는 선녀 6명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북쪽 벽에 글자가 희미하게 나타나 있다. 서쪽 돌덧널의 서쪽 벽에는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벽화의 내용은 악기 연주 그림으로 붓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생기가 있으며, 불교의 사상이 중심이 되면서 도교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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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요수 신권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 후, 이 마을은 거창 신씨의 집성촌으로 번창해 왔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 집은 1927년 신도성이 건립한 근대기 주택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당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이 집은 그러한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경남 지방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인 홑집 대신에 겹집의 팔작지붕으로 지어 집주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으며,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몄다.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 자리 등은 조선 중기 이전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 집안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 밖에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건물들도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등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등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거창 건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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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건계정

거창 건계정은 거창 장씨 문중이 1905년에 세운 것으로, 문중의 시조인 평보 장종행이 고려 충렬왕 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했는데, 그의 아들인 두민이 공민왕 때 홍건적들이 침입하여 개경까지 점령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사들을 지휘하여 개경으로부터 홍건적을 몰아내어 국란의 위기를 극복하는 무훈을 세우자, 이에 대한 공로로 공민왕이 두민을 아림군으로 봉했다. 이에 그 후손들이 두민의 공을 기려서 세운 정자이다. 건계정 계곡은 역사, 지리, 군사상의 요충지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거창하면 건계정을 생각할 만큼 고풍스러운 정자와 맑은 물이 굽이도는 물길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거창을 소재로 하는 글이나 문학 소재의 대상에서 으뜸이 되었던 곳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안로 1173-21
거창 갈천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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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갈천서당

갈천서당은 조선 명종 때 6현신의 한 사람으로 광주 목사를 지낸 갈천 임훈이 벼슬을 그만둔 뒤,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아우 임운과 함께 1573년 건립한 서당이다. 그 후 1878년에 후손들이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임훈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광주 목사를 역임하였고 장례원 판결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부하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갈천서당의 건물은 강당과 대문으로 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양측 면에 풍판을 달았다. 처마 밑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큰북의 외통이 걸려 있다. 대문은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임 씨 형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878년에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로 767-34
거창 동계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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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동계종택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1820년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고택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남쪽 지방임에도 추위가 심해 북방식인 겹집 형태로 지어졌고, 호서지방이 가까워 비가 잦아 비를 피하려 사랑채 누마루는 겹지붕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이는 고건축학적으로 특이한 것으로 눈썹지붕이라고도 한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또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동1길 13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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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역사관광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는 1810년에 이진악 선생이 지은 주택으로, 조부인 이지유의 호를 따서 동호재라 하였다. 동호마을의 안쪽에 완만한 경사지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안쪽 높은 곳에 안채 영역을 두고 낮은 곳에 사랑채 영역을 직렬로 배치하였다. 안채 영역은 서향한 안채가 있고, 우측 방앗간 채와 안채의 맞은편에는 곳간채를 튼[ㄷ] 자형으로 배치하고 있고, 안채의 좌측에는 별도의 텃밭을 두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정지, 툇마루가 딸린 안방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영역은 큰 사랑채와 중사랑채가 나란하게 남향하고 있으며, 사랑채 맞은편에는 대문채가 배치되어 있다. 큰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중앙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두고 좌우에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된 실을 배치해 평면에서 보면 중앙의 온돌방이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좌측 온돌방은 위패를 봉안한 가묘 방이며, 우측 온돌방은 상례 시에 빈소 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1길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