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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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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매천사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 선생은 한말의 순국지사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끼고, 경험과 견문한 바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을 지어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김택영과 국권회복 운동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고 불린다. 생전에 살았던 곳에 그의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1955년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광의면 월곡길 22-3
구례향교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1유형
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구례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구례향교는 중종 13년(1518년)에 구례군 백련리 서북쪽에 세웠는데,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숙종 30년(1704년)에 이곳 봉서리로 옮겨왔다. 대성전, 내삼문, 동재·서재, 명륜당, 외삼문 등이 남동향으로 향교의 일반적 배치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외삼문 밖에 이곳을 지날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으며, 외삼문 밖에는 연못이 있다.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현재는 봄, 가을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구례향교는 구례 구청에서 약 1㎞ 도보 약 18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구례읍 향교길 36
구례 석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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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구례군역사관광

구례 석주관성

노고단에서 왕시루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맥에 위치하며, 칠봉산 남쪽 봉우리 20m 아래에서부터 칠의사 아래 후면까지 이어져 있는 고려 시대 성곽이다. 삼한시대에 마한과 진한의 경계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군사상 요충지였고, 고려 때에는 남해에서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켜내기만 하면 전주에서 구례, 남원을 향해 넘어오는 왜적을 방어할 수 있는 호남의 전략적 요충지로, 고려 말 왜구가 횡행함에 따라 진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나, 조선이 개국하고 정국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진을 폐지하여 황폐화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도 방어사 곽영이 성을 쌓고 구례 현감인 이원춘에게 석주관 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석주관에 고려 말 때처럼 만호진을 설치하여 왜구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활용되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현재에 이른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750m이며, 높이 50∼120㎝로 대부분은 무너졌다. 13세기와 16세기 성을 쌓는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약 3분, 2.8㎞ 거리에 간전교를 지나 왼쪽으로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으며, 섬진강 대로를 따라 약 5.7㎞를 더 가면 운조루 고택을 방문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46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