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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역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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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초기화
박약재
한국관광공사 TourAPI 국문관광정보 서비스공공누리 제3유형
충청북도 제천시역사관광

박약재

제천에 있는 전통가옥으로 진주 강 씨 문중에서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건립한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강 씨 후손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제천 지역의 유력 사족으로 성장했다. 제천 상풍마을 초입에 제천 박약재 안내판과 진주 강 씨 유허비가 있고, 이곳으로부터 좌측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박약재가 나온다. 전면에 일각문을 세우고 주위로 막돌 담장을 둘렀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이고 앞에는 가운데 섬을 둔 작은 연못을 조성하였다. 중앙은 대청마루가 있고 왼쪽에 방 2개, 오른쪽에 방 1개, 그리고 툇마루를 두고 있다. 현판문은 조선 후기의 학자 유인석의 친필이다. 1907년 강순조, 박정수, 이화중 등이 호서 의병장 운강 이강년의 전투사인 『운강창의일록』을 이곳에서 편찬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이지만 진주 강 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정묘호란 때 척화를 상소한 강유가 이곳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충청북도 제천시 중말16길 5-4
미륵사(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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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증평군역사관광

미륵사(증평)

미륵사(彌勒寺)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혜능종 소속 사찰이다. 본 사찰은 수령이 300년이나 되는 느티나무 옆에 모셔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듯하다.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미륵사 보다 더 오래도록 지금의 자리를 지켜오며 대비보살로서 중생구제 원력을 펼치고 계신다. 관음보살의 영험이 알려진 것은 오래전 한마을 전체에 원인 모를 병이 돌아 매일 두세 명씩 죽어 나갈 때부터이다. 어느 날 한 노승이 나타나 마을 어귀 느티나무 옆에 있는 석조 관음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7일 이내 효험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떠났다. 주민들은 처음 보는 노승의 말인지라 그냥 흘려들었지만 이후에도 계속 질병이 심해져만 가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승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주민들이 모여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노승의 말처럼 7일이 되자 백약이 무효였던 마을 사람들의 병은 씻은 듯 완치가 되었다. 그 후로 마을에서는 느티나무 옆 석조 관음보살님께 매년 한 번씩 모여 기도를 올리게 되었으며 현재는 윤달이 든 해 음력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재를 지내고 있다. 미륵사는 천년의 세월 가까이 수많은 영험을 낳으신 석조 관음보살 입상을 기도처로 삼아 1930년 대 작은 초막을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 사찰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50년대 새로 전각을 지으면서부터이다. 미륵사라는 이름도 이때 가지게 되었고 현재의 ‘미륵댕이’라는 지명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수호불로 모시는 마을 사람들의 깊은 신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미륵댕이1길 13-5
미륵리 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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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역사관광

미륵리 불두

미륵리 불두는 충주의 미륵사지에서 하늘재로 향하는 길가에 있는 불두이다. 불신은 없고 부처님 머리 조각이 미완성 상태로 놓였다. 2000년에 도난당했다가 2003년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이후 새로 만든 불신 위에 불두를 올려놓았다. 대형 화강암 불두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남아있고, 눈매는 일자형으로 보이며 입도 일자형으로 다소 작게 표현되었고 입술 윤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코와 입 사이에는 사실적으로 음각 주름선이 나타나 있고 귀는 길며 코끝은 오뚝하지 않고 다소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미륵리 불두는 고려 시대 지방 불상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불두만 보았을 때도 거대한 크기이며 불두의 전체인 모습은 역삼각형에 가깝고 머리 윗부분은 편평하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매우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옛 불상의 느낌이 보이지 않아서, 안내문을 보기 전에는 현대의 조각품으로 착각하기 쉽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문효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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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역사관광

문효영당

청주시 우록리에 있는 문효 영당은 1708년(숙종 34)에 문효공 영의정 경재 하연과 정교 부인 성산 이 씨 부부 영정을 봉안한 진주 하 씨 집안의 사당으로 일명 타진당이라 한다. 하연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정몽주의 가르침을 받았다. 21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이곳에 봉안된 영정은 1467년(세종 13) 하우명이 그린 하연의 초상화와 성산 이 씨의 초상화를 1641년(인조 19)에 본떠서 그린 것을 경상도 합천의 타진당에서 영조 25년(1749)에 다시 본떠 그려 고친 것이다. 하연은 관복을 입고 부인은 대례복 차림을 한 모습을 그렸으며 보기 드물게 부인과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게 특징이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제사를 드리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영당은 1943년에 중건하고 1978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2개의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다. 1989년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우록4길 70-5
문수암(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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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문수암(옥천)

문수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공주 동학사의 강주를 역임했던 경봉(1885∼1969) 스님이 1930년 무렵 옛 절터에 창건했다고 한다. 문수산은 지금의 옥천군 청성면 마장리와 대안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이 산에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문수암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옛 문수사의 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도장리 마장동 뒷산에 불당골이라 부르는 곳에 절터가 하나 있는데 근래까지도 그곳에서 기와 편과 도자기 편 등의 유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문수사의 터일 가능성이 높다. 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외벽을 빙 둘러 팔상도(석가모니의 일생을 8장면으로 묘사한 그림)를 벽화로 그렸고, 정면 포벽에는 여래상, 좌우와 뒷면 포벽에는 나한, 연꽃, 매화 등을 그려 놓았다. 대웅전 앞마당 왼편과 오른편에 요사가 1동씩 자리하며 왼쪽 요사 쪽으로 미륵불 입상과 4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 왼편의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삼성각은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모셨다. 삼성각 앞에 서면 멀리 속리산의 준령과 넓은 들판이 훤히 보이며 마음이 확 트이는 곳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도장1길 33
문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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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역사관광

문수암

문수암은 진천의 미륵산 중턱에 구불구불 이어진 길 끝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체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사찰이다. 근처에 천안과 진천을 오가는 국도가 조성되어 있어 쉽게 만성사에 갈 수 있다. 문수암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미륵산에 자락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6 교구 마곡의 말사이다. 새로 세울 당시 이름은 만성사였으나, 1992년에 조계종으로 종파가 바뀌면서 사찰명이 문수암으로 바뀌었다. 만성사라는 사찰명은 수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로 명명된 것이라 한다. 이곳 산봉우리에서 석불입상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만성사가 창건되게 되었다. 석불은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최소한 고려 초에 사찰이 경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 사찰이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석불만이 자리를 지키며 일반인의 예불 대상으로 계속되었다. 1960년대에 외롭게 산을 지키고 있던 불상이 인연이 되어 석불인 지암리 석조여래 입상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새롭게 사찰을 조성했다. 정면 2간, 측면 1 간이었던 작은 법당을 새롭게 중창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사로 252-106
묵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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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역사관광

묵정서원

청주 묵정서원은 조선 후기의 서원으로 1695년(숙종 2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신식(申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에 ‘쌍천서원’으로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다가 1942년 유림과 후손이 협력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명칭을 ‘묵정서원’으로 개칭하였으며, 신덕린, 신포시, 신장, 신용, 신집을 추가 배향하였다. 묵정사로도 불린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와 5칸의 재실, 중앙의 신문과 양쪽 협문으로 된 정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신덕린을 주벽으로 하여 6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3월 16일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신식이 명신들의 찬시를 모은 찬졸재 시집 4책 등이 있다. 바로 옆으로는 조선 전기 문신인 신숙주의 영정을 모신 묵정영당(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길 71-29)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무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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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역사관광

무암사

제천 성내리 마을에서 동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왼쪽에 까치성산이, 오른쪽에 동산이 길게 능선을 드리우고 있는데 그 깊은 품 안에 무암사가 있다. 신라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 초기 이전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현재 법당인 극락전은 영조 16년(1740)에 중수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곳의 목조여래좌상은 극락전을 건립할 때 함께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무암사에는 목조여래좌상 이외에도 청동보살머리, 전패 등의 유물이 전한다. 절에서 서남쪽 위치에 바위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늙은 스님을 닮았다 하여 노장암이라 불리며 이 바위는 안개가 끼었을 때만 나타났다고 하여 이 절의 이름을 바위와 안개에서 따 무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객실, 수호실 등이 있으며, 극락전에는 목조아미타불좌상과 후불탱화, 지장탱화가 보존되어 있다. 부도 4기와 불기류, 촉대와 위패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4기의 부도 중 수월당 부도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1959년에 발견되었다. 특히 우부도는 창건 당시 목재와 기와 등을 운반하던 소가 죽자 사리를 모아 세운 사리탑으로 이 주변을 소부도골이라 한다. 대웅전 전면의 기둥은 수령 1,200년을 넘는 싸리나무의 기둥이라 하여 보존 가치가 높다. 절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기는 100년 이상 된 유기제품이며, 촉대와 위패는 정교한 솜씨로 조각하여 만든 특색 있는 유품이다. 사찰의 유물들로 보아 상당한 역사를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나 사적기가 없어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다.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청풍호로39길 285
만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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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역사관광

만뢰사

만뢰사는 조감의 위패를 모셔 놓고 그 공적을 후손이 기리도록 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인 조감은 만노성에서 유창국과 더불어 통솔자가 없어 방황하는 수천 명의 피난민을 이끌고 만노성에 침입한 외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조감은 사후에 예조판서에 올랐다. 1851년(철종 2) 백곡면 가죽리에 죽계사를 세워 김유신과 함께 조감을 배향하였다가 고종 때의 서원철폐령으로 죽계사가 철거되면서 배향을 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인 1949년 진천 길상사에서 다시 조감을 배향하였다가, 1961년 후손들과 지방 유림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에 새로 만뢰사를 건립하여 조감을 배향하게 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강당길 50-6
동화사(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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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역사관광

동화사(충북)

동화사는 작두산의 북쪽과 국사봉의 남쪽 기슭 사이로 흐르는 하천가의 절골에 있으며 남수원절로도 알려져 있다. 창건 연대를 알려주는 사료는 없으나 사지의 주변에서 통일신라 이후 조선조에 이르는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전하는 얘기로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말굽이 떨어지지 않아 주위를 보니 석불이 있었다고 하며 이에 왜장이 칼로 석불의 목을 쳐서 사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석불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고 전해진다. 동화사는 300여 년 전에 현재의 대웅전을 건립하여 불사를 잇고 있다고 하며 동화산리의 산 이름과 지명에 따라 동화사가 된 듯하다. 이곳은 정면 3칸, 측면 2칸, 대웅전과 근래에 신축한 요사가 있는데, 대웅전은 1992년 신축된 것이다. 이곳의 대웅전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상은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의 부러진 목을 복원하면서 잘못하여 머리가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높이 148cm이고 광배는 없다. 한편, 불상이 올려진 연화 대좌는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는 가장 큰 것이다. 상대석의 일부가 파손되기는 했으나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한편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높이가 133cm에 불과하나, 고려 초의 석탑으로 절의 역사를 추정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3층 옥개석과 기단부 갑석만 남아 있다. 기단 갑석은 1장의 석재로 되어 있고, 각층의 옥개석은 낙수면이 완만하다. 작두산과 하천의 물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하며 고즈넉한 사찰의 모습이 아름답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척산화당로 444
도마령(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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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도마령(전망대)

도마령은 영동군 황간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영동 최고봉 민주지산(해발 1,241m) 자락에 있는 해발 800m의 높은 고갯길로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이곳을 넘었다고 해서 도마령이라 이름 지었고, 답마령이라는 옛 이름도 전해진다. 도마령에 가면 고갯마루 위에 정자 상용정이 있다. 2002년과 2003년 태풍으로 영동군 곳곳이 재해를 입었는데 이때 복구 사업을 하면서 상용정을 세웠다. 상용정은 한국 전통 목조 구조로 시공하여 그 웅장함을 더하였다. 목재는 우리나라 소나무를 사용하였으며 화강암 암장 초석에는 우리나라 대표적 국악기인 대금을 형상화하였는데 국악의 고장 영동의 명소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전통 양식의 멋스러운 이 팔각정의 풍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고개를 오르내리는 도마령 길은 구절양장 춤을 추며 상촌으로 용화로 뻗어 가는데 그 풍경이 조화롭다. 또한 구불구불 굽이진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최근 명성을 얻고 있다. 영화 의 촬영지로 시골 풍경과 정겨운 인심이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곳이다. 비포장도로를 포장해서 2차선 도로가 되었고 구불거리는 도로 주변으로 민주지산의 수려한 풍광이 펼쳐져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민주지산의 숲길에서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덕천서원(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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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역사관광

덕천서원(청주)

1672년 (현종 13년)에 병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낸 몽암(夢菴) 유희령(柳希齡, 1480~1552), 숙옹(塾翁) 유흥룡(柳興龍, 1577~1656), 묵재(黙齋) 우신언(禹愼言, 1482~1547), 유항(柳巷) 정응창(鄭應昌, 1547~1622)의 위폐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진주유씨(晉州柳氏) 집안의 사당이다. 1699년(숙종 25년)부터 향사하다가 1868년(고종 5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되었다. 지금의 사당은 1971년에 중건하고 1987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을 좌우에 쪽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덕천서원(德川書院)’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자연석과 흙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오른쪽에는 덕천사비(德川祠碑)와 왼쪽에는 거북 대좌 위에 덕천서원묘정비(德川書院廟庭碑)라고 쓰여 있는 비신(碑身)이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청주시 문화관광)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노동리
덕주사 약사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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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역사관광

덕주사 약사여래입상

제천시 한수면 월악산 자락의 고찰인 덕주사에 있는 불상이다. 원래 정금사 절터라고 전해오던 곳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해 1983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덕주사는 법주사의 말사이며 신라 말기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절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며 특히 가을 단풍 명소로 알려진 곳이고 넓은 마당이 있어 탁 트인 곳이다. 덕주사 약사여래입상은 부분적으로 닳아있지만 형태는 양호한 상태이다. 특히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몸통의 밑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는데 옷 주름 등 다른 곳의 상태는 좋은 편이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낮고 작은 머리 묶음이 있으며 얼굴은 길쭉하지만 풍만하다. 양쪽 눈은 가늘고 긴 듯 하나 닳아서 구분하기 어렵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에만 형식적으로 걸쳐진 모습이다. 손 모양을 보아 약사여래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신체 비례가 맞지 않고, 돌 표면의 옷 주름을 간단하게 조각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제천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덕주산성, 미륵사지, 송계계곡 등이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2길 87
대원사(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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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역사관광

대원사(충주)

충주 대원사는 1929년 창건된 절로 1994년 대규모의 화재로 법당일부와 철불좌상을 봉안한 보호각이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였다. 대원사의 무량수전은 근래에 지은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법당 안에는 아미타불좌상을 주존으로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천불상과 신중탱화 및 동종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 짝 지붕 목조기와집으로 건물 내에는 보물 제98호인 충주 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원사는 충주 시내에 자리한 사찰로 근처 관광지로는 택견전수관, 관아공원, 주물유기장 등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사직산12길 55
대성사(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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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대성사(이원)

대성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옥천에는 전통사찰로 등록된 대성사가 2군데 있다. 이원면에 위치한 대성사와 옥천읍 교동리에 위치한 대성사인데 모두 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그러나 이 두 사찰은 그 사찰의 경영에 있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원면에 있는 대성사는 민가에 둘러싸여 있으나 한가하고 여유로우며,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조용한 도량이다. 불전이라고 해야 대웅전 한 채만이 전부이며 사찰의 영역도 그리 넓지 않은 작은 곳이다. 대웅전 전면에 마당이 있고, 마당에 4기의 석등과 법당창건 시 역공노비가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2001년에 중창한 건물로, 일반적인 불전의 정면이 3칸 혹은 5칸의 홀수칸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많은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청길 36-9
대성사(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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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대성사(옥천)

옥천군에는 대성사라는 사명을 가진 사찰이 두 곳이 있다. 이곳은 옥천읍에 위치한 대성사로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실천불교를 표방하는 사찰이다. 대성사에는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옥천 대성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대성사가 있는 청성면 도장리(道場里)는 ‘불당골(佛堂谷)’로도 불리는 것으로 보아 불교와 관련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옥천 육씨 족보에도 “조선 성종 22년(1491년)에 대성사에 석불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입상은 높이가 360cm이며, 가운데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머리에는 둥근 모자를 쓰고 있고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법의를 입고 있으며, 맨 아래에는 발의 모습도 확인된다. 왼손 가운데에 홈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지물(持物)을 받쳐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둥근 관모 형식을 쓴 형태는 서울 약사사 석불 입상(1490) 등과 유사하며, 예산 삽교 석조 보살 입상과 같이 두 개의 돌기둥을 조립하여 만든 형식은 고려 석불의 전통으로 볼 수 있다. 지역 공동체에 신앙의 대상이며, 조선 전기 석불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지용로 142
단호사(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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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역사관광

단호사(충주)

충주 단호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말사로 조선 후기 숙종 때 중건한 사찰이다. 중건 당시 ‘약사’라 하였고, 1954년 단호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3칸의 맞배집인 대웅전과 약사전, 용왕전, 요사채 등이 있다. 약사전 내에는 1976년 보물로 지정된 철불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11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고려 시대 철불의 귀중한 유품이며, 지역적인 유파성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외에도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관세음보살좌상, 미륵불입상 등 다양한 문화재를 만나 볼 수 있다. 단호사에서는 매월 첫째와 셋째 일요일, 초하루와 보름 때에 정기 법회가 열리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충원대로 201 단호사
단양 금굴 구석기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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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 금굴 구석기유적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嶋潭里) 남한강가에 있는 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동굴유적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문화 유적으로 전기구석기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거의 모든 시기의 유물층이 발견되어 각 문화층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1980년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에 실시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여러 시기에 걸쳐 문화가 형성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출토된 유물을 통해 구석기시대 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구석시유적지의 유물 및 의의 * 동굴의 규모는 입구 높이 8m, 넓이 7∼10m이며 확인된 동굴의 길이 85m이다. 구석기시대 전·중·후기,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들이 덧쌓여, 시기마다 만들어 썼던 석기·뼈연모·토기·조가비연모 등과 사냥했던 짐승뼈 화석과 조가비 및 토기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그들의 먹을거리와 삶 및 자연환경을 살필 수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단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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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향교

단양향교는 1415년 창건된 후 퇴계 이황 선생이 현 위치인 단양 단성면 상방리로 이건한 향교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으로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다. 영조 때 두 차례 낡은 부분을 손질하였으며, 정조 때 군수 조경진이 명륜당을 고쳐지었다. 1971년과 1977에도 각각 낡은 부분을 손질하여 고쳤다. 단양향교는 앞에 강학 공간을 두고 뒤에 제향 공간을 두는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풍화루를 지나 향교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쪽에 유생이 기거하고 글을 읽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이 위패를 모시고 제사들 지내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충혼로 26
단양 조덕수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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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 조덕수 고택

단양 조덕수 고택은 남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가곡면의 상덕천 마을, 해발 200m의 얕은 산자락(국수봉)에 있는 목조기와집으로, 조자형 가옥으로도 불린다. 조자형의 6 대조인 조덕수가 1770년경에 지었다고 전해온다. 이 지역의 중농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민가이다. ‘ㄱ’ 자형의 안채와 ‘ㄴ’ 자형의 행랑채가 맞물려 ‘ㅁ’ 자 모양을 이루는 전형적인 중부 내륙 지방의 민가 형식의 가옥이다. 안채는 19 세기 중엽 정도에 건축된 건물이며 정면의 왼쪽에서부터 건넌방, 대청, 안방이 차례로 있고 안방에서 앞쪽으로 꺾여 부엌과 아랫방이 있다. 건넌방 앞과 안방 뒤의 측면 툇간에는 툇마루를 달았고 대청마루가 툇간까지 연장되어 있다. 부엌 옆에 붙은 아랫방 앞에는 툇마루가 없이 함실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부엌에는 뒤쪽 상단에 1칸 규모의 다락이 있는데 이런 방식은 중부지방보다는 남부 지방의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랑채는 20세기 중엽에 지은 초가집으로 대문간과 함께 건축되었는데 구조는 일반적인 농가와 유사하다.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덕천1길 19
단양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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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단양 적성

단양적성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 정상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단양적성은 석축성으로 성의 길이가 923m이지만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동쪽 내외 부분의 안쪽 벽 높이 2~3m, 폭 1m의 석축이 일부만 남아 있다. 성재산 봉우리와 남쪽 비탈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며 성문 자리는 남서쪽, 동쪽, 남동쪽 등 세 곳에서 발견되었다. 산성의 주변에는 남한강의 상류 방면과 하류 방면으로 각각 고대 교통로가 나 있으며, 동서쪽으로도 길이 트여 있다. 남한강 수로를 다라 영월과 충주 방면으로 진출이 용이하고,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산성이다. 적성에서 단양신라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는 적성의 성격이나 목적,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비의 건립 연대는 늦어도 551년 이전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성은 6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가 남한강 상류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고자 쌓은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성으로 평가된다. 단양적성은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신라와 고구려 세력관계 변동을 알아보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노은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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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역사관광

노은영당

노은영당은 진천군 이월면 노곡 마을의 왜가리 번식지 부근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신잡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독송 신잡(1541∼1609) 선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 장군의 형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이조참판과 형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 2등에 평천 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개성유수가 되었다. 신잡 영정(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은 조선 선조 37년(1604)에 공의 54세 때 모습을 김이혁이 그렸다 하며 비단 바탕에 색을 넣어 그린 전신의 초상화인데 크기는 가로 90cm, 세로 167cm로 그림의 형태와 안면 처리법 등이 조선 중기 초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은영당은 1615년(광해군 7)에 건립되었으나 1818년(순조 18)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를 1856년과 1966년에 중수한 것이 현재 있는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반 칸의 앞퇴가 있으며 ‘노은영당’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사당 정면에는 ‘충정문’이라고 쓴 솟을삼문을 세우고 그 주변에는 돌과 회를 섞어 만든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얹었다. 노은영당 오른편에는 1985년 건립된 신잡의 부친인 신화국의 신도비가 있으며, 그 뒷산에는 신화국 부부 묘, 신잡 부부 묘, 신정희 부부 묘가 자리하고 있다. 진천의 자연을 둘러보며 역사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근리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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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노근리평화공원

충청북도 영동군에 위치한 노근리 평화공원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발생했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으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방문자센터, 평화기념관, 위령탑, 조각공원, 사건현장, 전망대, 평화기원마, 야외전시장, 교육관 등의 시설이 있다. 평화기념관은 공원의 주제성을 부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상설전시실 및 영상실 등을 포함하며 위령탑과 연계하여 노근리 평화공원의 랜드마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노근리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려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고, 영동군의 상징성을 부각하며, 공공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기념비적인 형태와 현대적인 조형미를 결합하여 위패봉안시설을 갖춘 위령탑을 설치하였다. 조각공원에서는 사건의 본질적인 정신과 한민족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노근리 주민들의 당시 모습과 아픔을 다양한 조각상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쌍굴다리는 노근리 사건이 발생한 현장으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평화교를 건너 평화기원마당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이용객의 휴식 및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추모 및 추념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난 뒤 사색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규모 이벤트 행사 시 이용할 수 있으며, 평상시에는 피크닉 장소로 이용되는 다목적 공간이다. 야외전시장에는 노근리 사건 당시 공중 폭격을 했던 비행기와 동일 기종인 F-86F 전투기와 군용 트럭, 지프가 전시되어 있다. 교육관은 청소년들의 교육장소 및 국제 학술행사 시 보조 공간으로서 약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구) 노송초등학교 부지에 건립되었다. 각종 세미나 개최 시 숙박 장소로서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
난계 박연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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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역사관광

난계 박연선생 생가

국악의 거리에서 외길을 따라 고당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난계 박연 선생이 태어난 가옥이 있다. 난계 박연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손꼽힌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음악가로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타계했다. 박연은 악보와 악기를 정리한 악서를 편찬하고 대고와 석경 등 아악기를 제작했다. 또, 궁중악을 완성하고 악기를 조율하는 편경을 만드는 등 국악을 발전시키고 완성한 국악의 아버지다.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할 뻔하였으나, 세 임금에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 4년(1458년) 3월 23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박연이 낙향할 때 강을 건너며 배 위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 피리 소리에 가던 배도 멈추고 쓸쓸한 느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인물의 비애를 단적으로 나타내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과 함께한 국악의 거성 난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안채와 사랑채를 복원하였다. 생가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측면 1칸은 퇴칸 구조이며 정면 2칸만큼 우물마루를 설치하고 한쪽에는 부엌과 곡식창고를 부설한 고미 반자에 우진각의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다. 우진각지붕은 용마루와 추녀마루만 있고 내림마루는 없으며 전·후면은 사다리꼴이며 양쪽 측면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용마루가 짧고 내림마루가 길게 늘어진 모습이 특이하다. 부속 채는 1동으로 외양간, 광과 방 1칸인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하고당1길 14-17
꽃절(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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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역사관광

꽃절(화암사)

음성군 원남면의 사향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꽃절은 고려 시대부터 내려왔다고 전해지며, 여러 고증 문헌자료와 지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1937년에 김승원이 꽃절을 청진암으로 변경하여 창건하였고, 1981년 신도회에서 청진암을 화암사로 바꾸었다. 2000년도에 화암사는 다시 원래대로 꽃절이 되었다. 이곳에는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강당을 겸하는 관음전이 있다. 사찰에 전해지던 불상 7점 가운데 3점은 흙으로 제작한 것으로, 음성읍 한벌리 수복암으로 옮겨졌는데 1점은 부서지고 다른 2점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불상 가운데 하나인 약사여래 불상이 보관되어 있고, 법당에는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덕로 330
기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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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역사관광

기암서원

청주의 기암서원은 조선 후기의 청백리 강백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99년(숙종 25)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강백년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오창면 기암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706년에 오숙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84년 후손들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암서원 경내로 들어가기 전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한 척토민 오정근의 효자각을 볼 수 있으며 효자각 내에는 ‘군신천재우 충효일생심’이라는 정조의 어필을 보관하고 있다. 기암서원 왼편에는 임동철이 글을 짓고 서예가 김동연이 쓴 조선시대 문신 경산 오익환 유허비도 볼 수 있다. ​유허비는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정문, 재실 등이 있고, 정문 밖에 중건 기념비가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강백년을 주벽으로 봉안하고, 그 옆에 오숙을 배향하였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7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창건록』 1권과 『원지』 1권 등이 있다. 고즈넉한 향토 유적이며 역사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있는 숨은 명소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갈산3길 15
금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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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역사관광

금화서원

금화서원은 보은군 금적산 북쪽 기슭에 있는 서원이다. 1814년(순조14)에 최덕진이 선조들인 삼지(三地) 최운(崔澐)과 계당(溪堂) 최흥림(崔興霖)의 사묘 건립을 발의하고 지역유림 강재문 외 105인의 찬동을 받아 감사에게 건의하여 승인을 받아 1815년에 창건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과 후진 양성을 하여 오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1917년 다시 지방 유림들의 주선으로 복건하여 5현을 봉안하여 매년 음력 9월 초 정일에 년 1회 제향을 봉행하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2변(籩) 2두(豆)이고,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사우와 강당 그리고 5칸의 관리사가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국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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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역사관광

국계서원

1701년(숙종 27) 내수읍 국동리 국동 마을에 박증영, 변경복, 이덕수, 이수언을 봉향하고 설립한 서원이다. 입구에 들어서 돌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에 담장을 두르고 있는 곳이 사당이다. 1871년(고종 8)에 철폐된 것을 1960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60년에 중건하고, 1972년에 중수한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내부는 마루방에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국계사’라는 편액을 걸었다. 마당 앞에는 ‘사현문’이라고 편액한 솟을 대문을 세우고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사당 앞에는 ‘국계서원’이라고 편액한 강당이 있다. 마을 들녘 나지막한 언덕에 잘 정비되어 있으며 홍살문 대신 작은 울타리 대문이 찾는 이를 맞이하는 곳이다. 1960년에 다시 세운 곳이라 옛 흔적을 찾기는 어려우나 재정비한 한옥의 아름다움과 조상을 모시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어우러져있는 곳이다. 강당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
구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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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군역사관광

구절사

구절사는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구절사는 옥천의 상동 부락 서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식장산 영축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절사는 조선 태조 2년, 1393년에 무학대사께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사명은 영구암이었는데 이는 영축봉의 동쪽과 서쪽의 두 정상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탑 사거리에서 구절사까지는 좌우에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들은 5월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향기가 온 천지를 감싸는 아카시아 꽃길을 이룬다고 한다. 이 사찰은 어느 순간 폐사되었으나, 1933년에 절 아랫마을의 한병석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다가 중건했다. 이후 사찰의 명칭이 구절사로 바뀌게 되었는데, 절 뒤에 있는 영축봉을 구절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상중길 226 문화재(전통사찰-구절사)
구인사(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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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역사관광

구인사(단양)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다. 1945년에 건립되었으며, 1966년 현대식 콘크리트조로 지은 이색적인 건물이다.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상월원각 스님이 1945년에 이곳에 손수 칡덩굴을 얽어 삼간초암을 짓고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하여 구인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구인사는 현대식 건물의 대가람 (총 건축면적 15,014㎡)으로 절 안에는 5층 대법당을 비롯하여 삼보당, 설선당, 총무원,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꽉 메우고 있으며 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구인사를 방문할 때 두 가지 볼거리를 빼놓으면 안 되는데, 이는 바로 국내 최대 규모의 대법당과 법어비이다. 대법당은 1980년 4월 29일 준공된 5층 건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이다. 5층의 대법당은 상월원각 대조사가 삼간초암을 얽어 처음 구인사를 창건하고 수행하 시던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이는 남대충 대종사께서 대조사님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전통양식과 현대적 공법으로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대법당을 지은 것이다.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비는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일생동안 종도들에게 가르쳐 오신 모든 법문을 총 집약시켜 간략하고 명료하게 요약하여 설법하신 법어를 새겨놓은 비석이다. 이 법어 안에는 부처님 팔만대장경의 모든 진리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넓고 미묘한 불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구인사에서는 나를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체험, 단주, 연등 만들기 체험, 당일형부터 숙박형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도 진행하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길 73
광명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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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역사관광

광명선원

광명선원은 1974년 창건된 광명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98년 대한불교조계종 광명선원으로 사찰 명칭을 변경하였다. 사찰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요사채, 공양간, 강당, 산신각 등이 갖춰져 있다. 아울러 2기의 도량탑과 영탑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영탑 공원은 불교의 장례법인 부도탑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을 말한다. 입구에서는 이러한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영탑을 지나 올라가면 또 다른 자연과 잘 어우러진 사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대금로 1402
구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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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역사관광

구계서원

청주 구계서원은 조선 후기 선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47년 지방 유림이 괴산군 청안면 석곡리에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이준경,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를 모셨다.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헐어서 치워졌다. 광복 후 1955년에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서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1982년에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쳤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으로 된 사우(祠宇), 5칸의 재실(齋室), 신문(神門), 동·서 협문(挾門), 기념비 등이 있다. 사우에는 중앙에 위치한 이준경의 위패를 중심으로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춘추 제향 시 제관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7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안뜸로47번길 28
괴산 정인지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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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정인지 묘소

괴산 정인지 묘소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 , 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또한,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집현전 직제학, 부제학 등을 지내면서 성삼문, 신숙주, 최항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있다. 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과 장명등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과 망주석이 서 있다. 묘소 아래에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 서거정이 지은 비문을 윤보선이 쓰고 성락서가 제전을 써서 다시 세웠다.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외령로1길 24
괴산 수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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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수월정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인 소재(蘇齋) 노수신이 유배되었을 때 거처하던 곳이다. 노수신(1515-1590)은 중종 38년(1543) 문과에 급제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같이 독서당에 뽑혀 함께 학문을 연구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관직에서 파면되어, 순천·괴산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선조 즉위 후 복직되어 후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 건물은 노수신이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순천, 진도 등지로 유배되었다가 괴산으로 옮겨져 명종 20년(1565)부터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괴산 연하동(煙霞洞)에 있던 적소인데 괴산수력발전소 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기자 1957년 현 위치에 이건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에 우물마루를 깐 대청 1칸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 각 1칸이 있으며 전면에 툇마루를 둔 간소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고 하여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315-38
괴산 송병일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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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역사관광

괴산 송병일 고택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고택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등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안채 앞에는 ‘一’ 자 형태로 곳간채가 길게 세워져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바닥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워 튼튼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안채는 작은 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도록 담이 둘러져 있고 옆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위치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광채는 일자형으로 곡식은 물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던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 주위로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당은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또 마당 한편에 뜰마루를 설치하여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잘 가꾼 잔디밭과 화초는 고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종손들이 6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우암 송시열의 묘가 고택 바로 위에 있기도 하다. 현재는 충북 양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화양계곡과 선유계곡, 공림사 등이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청천4길 17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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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

괴산 보안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본래 노천의 석단(石壇)에 모시어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것을 현재 법당을 지어 그 안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이 불상은 금박(金箔)을 칠하였으나 원형은 잘 남아있다. 머리에는 낮은 육계(肉?)가 있고 미간의 백호(白毫)와 이목구비가 정연하다. 상호(相好)는 살이 쪘으나 목에 돌린 삼도가 양 귀와 잘 어울리어 준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복부 앞으로 약간 올렸는데 손바닥에 어떤 물체가 놓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병을 올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보인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등뒤로 넘겨졌고, 왼쪽 가슴에서 내려진 옷의 주름은 무릎을 덮었는데 양쪽 발바닥이 그 위로 노출되어 있다. 각부의 수법이 둔중하며 금박이 두터워 더욱 둔한 감을 준다. 결가부좌한 좌고는 117cm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23